한국사 – 선사시대 알아보기

안녕하세요. 소호의 세상입니다. 오늘은 한국사 중에서 선사시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사시대는 고조선의 탄생전의 시대로 크게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로 나누어져있습니다.

구석기시대

구석기는 무리사회로 계급이 없는 평등한 사회였다. 식생활은 채집과 수렵으로 살아갔으며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했으므로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는 사회였다. 옷은 채집과 수렵으로 얻은 동물가죽으로 만들어 입었으며, 거주는 동굴이나 막집에서 지내며 계절에 따라 옮겨다니며 생활하였다. 구석기시대의 거주지는 연천 전곡리, 공주 석장리, 단양 수양개, 단양 금굴, 청원 두루봉동굴(흥수아이)에서 발견되고 있다. 사용한 도구는 큰 바위에서 작게 떼어낸 뗀석기(주먹도끼)를 사용하였고, 기온이 상승하여 작고 날랜 짐승들이 출현 하기 시작한 이후 부터는 뗀석기보다 조금 더 날카로운 슴베찌르개를 사용하여 사냥하였다. 

신석기시대

신석기는 농경을 시작하여 씨족과 씨족이 합해진 부족사회였다. 또한 여전히 평등한 사회였다. 식생활은 밭에서 농사를 일구어 얻어진 곡식을 먹었고, 농경사회가 되었다는 건 수렵이 아니라 자연을 이용하여 인간이 먹을 수 있는걸 생산해냈다는 데 의미가 크다. 옷은 실을 생산하는 가락바퀴와 뼈바늘을 이용하여 옷을 지어 입었으며, 거주는 농경사회가 시작되며 정착해서 살기 시작했고, 강가나 해안가 근처에서 움집이라는 반지하 형태의 간단한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움집 근처에는 조개무덤인 패총들이 발견된다. 움집은 서울 암사동, 부산 동삼동 등에서 발견된다. 사용한 도구는 돌을 갈아서 만든 간석기를 사용하였다. 갈돌, 갈판이라고도 부른다. 곡식을 담을 그릇 또한 필요했기에 이른 민무늬 토기, 빗살무늬토기를 사용하였다. 계급이 없는 평등한 사회 였지만 자연환경에 따라 농사의 성패가 결정 되므로 태양을 숭배하는 애니미즘, 동물을 숭배하는 토테미즘, 무당이 있는 샤머니즘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청동기시대

청동기는 잉여 곡식을 두고 싸우게 되고 그 결과 계급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 결과 군장국가가 만들어지게 된다. 식생활은 신석기 때와 마찬가지로 곡식을 먹었고, 거주는 여전히 움집을 만들어서 살고, 앞에는 강을 두고 뒤에는 산을 둔 배산임수 형태의 위치에 지상에 집을 지어서 생활하게 된다. 청동기시대 움집에서 발견되는 특징은 지상에 있다는 것과 한쪽에 요리를 할수있는 화덕이 발견된다. 부여 송국리, 고창에서 주로 발견되었다. 도구는 반달돌칼을 사용하였는데 벼이삭을 벨때 사용한것으로 추정된다. 청동기 시대이지만 청동은 귀했기 때문에 농경에는 여전히 돌을 이용하였다. 토기는 민무늬토기(미송리식토기)를 사용하여 곡식을 담았다. 청동기 시대가 계급사회임을 보여주는 증거는 고인돌과 돌널무덤, 비파형동검과 거친무늬 거울을 통해 알수있다. 무덤이 클수록 지위가 높았음을 알수있고, 청동으로 만든 사치품이 등장하였다는 것으로 알수있다. 

철기시대

철기는 연맹왕국의 시대이다. 철기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철제로 된 농기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청동기에 이어서 계급사회가 여전히 유지 되었으므로 무덤들에 특징이 있는데 덧널무덤과 독무덤에서 드러난다. 덧널무덤은 관 밖으로 더 큰 관을 덧대고 그 관사이에 그릇같은 부장품을 넣어서 같이 묻는 것이고, 독무덤은 항아리 2개를 이은 그 사이에 시신을 안치 시키는 방법이다. 철기시대에도 청동으로 만든 사치품들이 발견되는데 세형동검과 잔무늬거울이 그것이고 이러한 것들을 거푸집을 미리 만들어 찍어내는 방식으로 발전했음을 알수있다. 세형동검은 한반도내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된 것으로 한반도 내의 독자적 청동기 문화이다. 또한 중국의 화폐인 명도전과 오수전, 붓등이 발견된것으로 보아 중국과의 교류 또한 있었던 것으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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